설교

2020.5.31성령강림절

별량제일 2020. 5. 31. 10:16

200531 시편 10211-12절 영원하신 하나님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신 성령강림절입니다. 유월절이 지나고 50일 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50일 만에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지난 화요일 이 시편 말씀을 읽으며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읽다가요.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간절히 기도했거든요. “하나님! 성경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게 해주소서. 성도님들과 나눌 말씀을 주소서.”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침 기도 때 했는데, 바로 아침에 응답이 오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오후에 일부러 시간을 봤습니다. 오후 4:40분에 큰 감동을 주셨습니다. 지난 화요일 오후 440분에 받은 감동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1절 말씀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말씀이었습니다. ‘, 나는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구나.’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기울어지는 그림자해가 질 때, 그림자가 어때요? 길게 늘어뜨려집니다. 마치 힘없이 축 처진 것처럼 늘어진 상태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겉사람, 우리의 육체는 세월이 흘러 낡아집니다. 힘이 빠집니다. 기억력도 많이 쇠퇴해집니다. 찬송을 부르다가도, 그렇게요 많이 불렀던 곡인데도 말이죠, 가사가 문제가 아니라, 곡 자체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노래를 할 수가 없습니다. , 우리가 곡을 따라 찬송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 우리 정신은 마치 기울어지는 그림자, 길게 늘어진 그림자 같구나.’

 

그리고 다음 말씀에,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생명력을 잃고 말라가다가 완전히 생명력을 잃어 시들어진 상태가 그려집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둡니다. 어떤 하나님이시니까요? 영원히 계신 하나님이시니까요.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창세전에 나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기울어진 그림자같이, 시든 풀같이, 사라지고 말, 생명력을 잃어버린 나를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소생시켜주셨습니다. 생명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화면보기) 요한복음 524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어 사라질 우리를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겁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바로 그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 마음속에서 이런 뜨거움이 일어났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대대에 이르도록 찬양 받기를 원하는 그런 뜨거움입니다. 부모님, 우리, 자녀들, 손주들, 자자손손 대대로 찬양 받으시길 원합니다.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전에도 이제도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수 천 년이 흐르도록, 자자손손 대대로,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영원토록 기억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후손이, 자자손손 대대로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기억되고, 대대로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또한 제 머릿속에는 이것이 그려졌습니다. 시간적으로 그렇다고 한다면 공간적으로도 이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당 만이 아닙니다. 별량면, 순천시, 우리나라, 온 세계 열방 가운데에 울려 퍼질 것을 상상해 봅니다.

 

(혼자 부르기)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 주의 --,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비추소서. 주님의 영광 온 땅 위에, 부으소서. 내게 성령의 불을, 넘치소서. 은혜와 긍휼을 열방 중에, 전하소서. 빛 되신 주의 말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여! 자자손손 대대로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화면보기) 시편 10211-12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오늘 성령강림절인데요. 우리 말씀 한 군데 더 보겠습니다.

(화면보기) 데살로니가전서 519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원어적으로 볼 때, 소멸하다는 의미는 불을 끄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원어에 충실해서, 실제로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개정판은 똑같이 번역을 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그럼,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성령님께서 우리 맘에 불을 붙여주셨는데, 그래서 주님에 대한 사랑, 영혼에 대한 사랑, 사명감이 내 맘에서 불타올랐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있다가, 말씀을 보고 있지 않다가, 찬송하지 않고 있다가, ‘뭐 이정도야 괜찮지?’하며 세상 즐거움에 빠지고, 욕심대로 살다가, 그 뜨거웠던 사랑이 다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불타올랐던 사명감은 다 꺼져가고 있습니다. 그 확실했던 믿음은 너무나도 약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했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두려움과 낙심과 절망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을 소멸하고 말았습니까?

 

요즘 고아원은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먹거리도 풍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아원에서자란 아이들은 심리적 허기증이라는 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먹어도 왠지 모르게 심리적 허함으로 인해 계속 배고픔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부모의 품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라서도,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 왠지 모를 무기력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우리의 빈 마음, 우리의 영적 갈급함, 무엇으로 채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 어느 무엇으로도, 그 어느 누구라도,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이 일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님만이 우리의 빈 마음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성도는 마음에 안정을 잃어버리고, 고아와 같은 무기력함 가운데 살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성도는, 부모의 품에 안긴 아이처럼, 안정과 위로가 넘치는 가운데, 생명력 넘치는 삶, 활기찬 삶을 살게 됩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의 빈 마음을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공허한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소망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실 수 있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시고, 믿음으로요 성령님을 구하셔서,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위로, 평강, 기쁨, 소망, 사랑, 이런 것들로 여러분 마음에 가득한 성령 충만한 풍성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욕심을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그런 순종의 마음을 주십니다. 세상 즐거움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넘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한 예화를 들려주며 마치려고 합니다.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미국의 핵폭탄 투하로 항복을 하게 됩니다. 패배한 일본은 절망감에 빠졌고, 특히 핵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방사능으로 인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인들을 위로한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그는 나가사키의 방사선과 교수 나가이 다카시 박사입니다. 그는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아내를 잃었고, 자신도 원폭피해로 인한 백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폐허가 된 나가사키를 재건하고, 방사능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잃고 인생을 포기하려는 수많은 시민들, 불치병으로 자포자기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삶의 의미를 갖게 해주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자녀들에게 쓴 글입니다.

너희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앞으로 외롭고 험한 길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너희들의 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길이다. 그 길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걸어갈 것인지를 하나님께 항상 기도로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잃어버린 슬픔이 있습니다. 그 어느 무엇도,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질 못합니다. 내 빈 마음을 채워주질 못합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내 빈 마음에 찾아 오셔서, 참된 위로와 평안을 주십니다. 다시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주십니다.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입니다. 성령님을 구하십시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참된 위로와 평안, 기쁨, 소망,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주시고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내 욕심을 버리고, 순종하고요, 세상 즐거움을 버리고, 주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한,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화면보기) 찬송가 191, “내가 매일 기쁘게

 

<찬송 후 기도 및 축도>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사라지고 말 것들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 가정이, 후손이, 자자손손 대대로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주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을 소멸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스스로를 살펴봅니다.

우리의 영적 갈급함, 우리의 빈 마음을 성령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님을 구하오니, 우리 맘속에 찾아오셔서, 기쁨, 평강, 소망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으로 넘치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