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9주일 로마서 7장 24-25절 변화된 삶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걸 어느 누구나 다 바라고 원하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살려고 하면, 말씀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독생자를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린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시는 감동이 있을 때 180도 달라집니다.
♣로마서 5장 5절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 환난이 있지만, 그것들은 우리로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 위에 소망으로 더 견고히 서게 만듭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덧붙여서 설명하자면요, 세상 사람들이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아픔과 고통, 환난이 있으면, 어떻게 되지요?
낙심합니다. 절망합니다. 주저앉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주저앉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기대하는 소망을 가지고 무릎을 꿇어 기도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소망이 있으니까요.
무슨 근거로 이런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령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동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이런 깊은 감동과 깨달음이 있어요.
그럼 어떻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해합니다.
예수님의 그 놀라우신 십자가 은혜에 한없이 기뻐합니다.
그 기쁨과 감격함이 있는데요.
어찌 하나님의 법이 무거운 짐이 되겠습니까?
어찌 예수님의 계명이 나를 얽어매겠습니까?
하나님의 법, 말씀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사랑의 약속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결코 얽어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하나 되는 기쁨을 선물해줍니다.
말씀이 나에게 사랑으로 선물로 다가와서,
말씀대로 사는 기쁨이 있고요,
매일매일 악한 마귀와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으로 승리하며,
승리의 찬송을 기쁨으로 부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가장 바라는 꿈이 달라졌습니다.
전에 돈 많이 벌고 세상에서 잘 되고 이런 것이 우리의 꿈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 믿고 끝까지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우리의 꿈입니다.
천국에서 영생복락 누리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내가 높아지고, 내가 잘 되고,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예수님이 내 맘에 들어온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걸 간절히 바랍니다.
내 삶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또 내가 아니라 이웃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어요.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셨듯이 나도 이웃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잘 먹고 잘 살도록, 나누며 살기를 바랍니다.
나의 이익에서 남의 유익으로 바꾸어졌습니다.
내 삶의 방향은 남의 유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아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말씀대로 살지를 못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싶지만,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괴롭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심히 괴롭습니다.
왜요?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덤벼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마귀를 대적하라.”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마귀를) 대적하라.”
이 영적 싸움에서, 언제나 성령 충만, 매일 영적 무장하셔서,
날마다 승리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승리하지 못합니다.
쓰라린 패배를 당합니다.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가슴 아파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변화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1) 롬8:1-2 말씀처럼, 죄에서 해방 됨, 죄에서 참 자유 얻었음을 확실히 선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지 마십시오.
그것 또한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죄를 짓고서 가슴 아픔, 애통함은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다고 자신을 정죄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애통함으로 회개하면 모든 죄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 인하여 받을 형벌과 저주를, 예수님께서 날 대신하여 다 받아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를 정죄하지 마십시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값을 이미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탄이 우리의 죄를 고발한다고 할지라도 다 허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다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다 받아버리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변화된 삶, 첫째, 죄 지은 것에 대해 애통해하며 회개는 확실히 하되,
모든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시고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이미 죄의 벌을 다 받아버리셨기에,
어느 누구도 나를 정죄 할 수 없으니, 죄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변화된 삶, 둘째, 죄에서 참 자유를 얻었다고 죄를 짓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롬6:1-2, 15)
그러기 위해선, 날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일회적☓, 계속적○)
성령 충만 – 성령님의 이끄심에 온전히 따르게 된 상태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찬송하고, 날마다 말씀 읽고 생각하며, 날마다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힘쓰시길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악한 마귀가 시험하고 유혹하는 대로 육체의 욕심에 끌려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말씀을 따라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시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말씀대로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아픔과 고통 중에도,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주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하소서.
모든 죄 용서함을 받았음을 확신하며 죄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악한 마귀를 대적하고,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말씀대로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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