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5주일 마가복음 4장 39절 인생의 풍랑이 일 때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화면보기) 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1)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 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2)주님 약속하신 말씀위에서 세상 염려 내게 엄습할 때에
용감하게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3)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하신 주의 사랑 힘입고
성령으로 힘서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4)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성령 인도하는 대로 행하며
주님 품에 항상 안식 얻으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내 인생에 풍랑이 일지라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잘 견디고 이겨내시며, 승리의 찬송을 부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매일 우리는 성경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들이 믿어지십니까?
그 말씀들이 정말 내 삶속에서 살아서 역사한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내 인생에 풍랑이 일 때도, 불안한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절망의 수렁에 빠진 나를 건져내어 소망의 찬송을 부르게 하고, 슬픔 중에 큰 위로를 주는 그런 믿음의 능력이 있는 말씀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오래 전에 기록이 되었지만, 이 말씀이 지금도 나에게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한 번 그런 믿음을 가지고 읽어보십시다.
(화면보기) 이사야 41장 10절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고, 과거로 끝나버린 말씀이 아니고,
지금 내 삶속에 살아 역사하는 말씀으로 믿으셔서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28:20(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심.) 요14:14(예수님께서 행하심.)
이 말씀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씀이 아닌,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에 큰 힘이 붙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그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그렇게,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그게 믿어지십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기도할 때 보면, 자주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요. 정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내 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아시고, 내 속마음까지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습니까?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흐르는 요단강 물을 멈춰 세우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시고 말이죠.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데요. 못 고칠 질병이 없으시고,
우리가 구하는 것은 다 이루어주실 수 있는, 실제로 내게 전능하신 분으로 믿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실제적인 믿음이어야 합니다. 정말로 내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실 수도 있다.’ ‘그러실 거야.’ 이런 정도가 아닙니다.
확실하게 ‘그렇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신다.’
‘과거에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행하실 것이다.’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나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살리셔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확실한 믿음,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확실한데요. 소망이 확실한데요. 죽음이 두렵겠습니까?
힘든 상황이라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주저앉겠습니까?
물론 연약한 사람인지라, 잠시 흔들리고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다시 굳게 섭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속에, 주님께서 나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는 넘치는 소망 가운데,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여러분! 내게 주어진 상황이 지금 어떠합니까? 인생의 풍랑을 만나셨습니까?
그런다고 할지라도, 확실한 믿음과 확실한 소망으로,
항상 기뻐하고요, 쉬지 말고 기도하고요, 범사에 감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도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 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래서 오늘은 첫 번째로 인생의 풍랑이 일 때 믿음에 대해,
그리고 다음으로 인생의 풍랑이 일 때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할까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이제 오늘 말씀 막4:35-41 내용을 보십시다.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요,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어느새 호수는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들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라고 하는데, 조그마한 호수에서 왜 그리 무서워했을까?'
하는 문제죠. 그런데 조그마한 호수는 아니고요, 상당히 큰 호수입니다.
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 갈릴리 호수 혼용해서 사용되고 있는데요. 저는 얼른 머릿속에 떠오르는 복음송이 있었는데요. 그게 “갈릴리 호숫가에서”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을 발견했어요. 제목은 “갈릴리 호숫가에서"인데요.
가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요?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성경을 복음서를 기록했던 당시에는 바다라는 단어만 있었지, 호수라는 단어가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큰 바다, 작은 바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고요.
오늘에 와서 정확히 표현하면, 갈릴리 호수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호수가 아닙니다. 꽤 큰 호수입니다.
길이가 옆으로 12km정도 됩니다.(우리 교회서 청암대까지가 13km)
세로로는 21km(우리교회서 성가롤로로 병원까지가 22.9km)
호수 깊이도 상당해요. 무려 40m나 됩니다.
거기에다가 우리가 좀 더 알면 좋은데요.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있는데요. 산 정상에서 호수까지 600m나 됩니다. 그렇게 뭐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끔 일어나는 일인데요. 600m 높이에서 급강하되어,
오늘 본문 37절에 나오듯이 큰 광풍이 일어납니다. 자, 이때 제자들이 어떻게 했지요?
‘우리가 죽게 되었다.’면서 아우성쳤습니다. 다급하게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40절에요.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 사건을 남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마시고요, ‘우리 인생에 풍랑이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참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왜 제자들이 그렇게 무서워하고 믿음이 흔들렸을까요?
제자들은 자신들을 부르셔서 제자로 삼아주신 스승이신 예수님을 신뢰하기보다
풍랑의 환경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분명히 배에 같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안 계신 것도 아니고, 같이 계시는 데도, 이런 큰 광풍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렇게 흔하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일인데,
이런 엄청난 풍랑을 만났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나에게도,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이 가운데도 풍랑이 일어날 수 있구나.’
여러분도 이 사실을 생각해보시면, 저와 같이 위로를 받으실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로 믿냐면요?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심을 믿는단 말이죠. 그렇지만 우린 크고 작은 인생의 풍랑을 만납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데도, 어렵고 힘든 일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솔직히 어떨 때는 가슴이 떨리기도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냐?’ 속으로 생각하면서 큰 근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떨고 있는 제자들을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요? 이런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니까요.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잘 부르고 많이도 불러보았지만, 또 성경 곳곳에서 이런 말씀들을 읽어보았지만,
또 읽을 때마다 큰 위로와 힘을 얻었지만, 막상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인생의 큰 풍랑이 일어날 때,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크고 많은 문제들만 바라봅니다.
이제 우리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주님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화면보기)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1)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3)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4)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날에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아멘.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근심하며 떨었던 저가,
이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그 문제와 맞서서 버티고 견디고 이겨내길 원합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도 문제보다 더 크신 주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수 있고,
문제 가운데서 견디고 이겨낼 힘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마가복음 그 앞 구절들을 봐보았습니다.
1장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는 걸 저들은 보았습니다.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시는 걸 목도했습니다.
심지어는 나병환자까지도 깨끗해졌어요.
2장에서는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3장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수없이 보고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배에 같이 타고 계십니다.
그러나 저들은 600m 높은 곳에서 급강하하는 강한 바람으로 일어난 풍랑이 일자 무서워 떨고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체험들을 했습니다.
기도응답을 한두 번 받았습니까? 셀 수 없이 많은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저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생의 풍랑이 일 때, 떨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로 받아들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내 생명을 책임져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의 자세를 취하고 싶습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며, 인생의 풍랑 가운데서도 주님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여러 모양으로 문제들을 겪게 됩니다.
자녀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사업문제, 물질문제 등 우리 인생에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풍랑도 잠잠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풍랑이 일 때, 풍랑만 보고 있지 마시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
참 평안과 위로와 힘을 얻으시고요, 오히려 소망의 찬송을 부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의 풍랑이 일 때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야할까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생각하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풍랑에 일 때, 예수님은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고, 그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더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의 찬송을 부르십시다.
정말 저가 좋아하는 찬송인데요. 우리 찬송가 370장 같이 부르십시다. (화면보기)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 뒤 따라가겠습니다.”
(1)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3)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4)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 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