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수요일밤 욥기 1장 21절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믿음이란 절망의 언덕에 소망의 집을 짓는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절망의 언덕에 아름다운 소망의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내 눈에 보여 지는 언덕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아름다운
집을 지을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피땀을 흘려서
거친 땅을 일굽니다. 뽑아내야 할 것들을 뽑아냅니다.
기초를 다집니다. 그리고선 아름다운 집을 짓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그 믿음의 사람,
욥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이 소중한 모든 것을 상실했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예배였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20절 보십시다.
(화면보기) 욥기 1장 20절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놀랍지 않습니까? 아니, 이런 상황에서 예배를
드려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잠깐 말씀을 드리면요,
욥의 소유가 양 칠 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였는데요,
세상에나, 스바 사람이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나마 남은 것도요,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살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열 명의 자녀들이 있었는데요, 큰 바람에
집이 무너져서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했다고요? 예배를 했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21절 본문까지
보시면, 땅에 엎드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찬양을 한 것입니다. 풍성한 소유물을 주신 이도
많은 자녀를 선물로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이 소유물과 자녀들을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송을 했습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혹시라도 내 건강,
내 소유, 내 자녀, 내 몸,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있다 보니까,
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강을 잃으니까,
절망을 하는 겁니다.
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돈이 없어지니까,
절망을 하는 겁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자녀의 앞길이
열리지 않으니까, 절망을 하는 것입니다.
건강도, 돈도, 물질도, 자녀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 거두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지금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지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요3:16)도 부활(고후4:14)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과 같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셔도 은혜, 거두셔도 은혜, 왜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시는 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데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요, 이런 믿음,
이런 의식으로 사는데, 절망할 수 있습니까?
욥과 같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확실해서, 절망을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을 잃어버렸어도 예배하고요,
돈이 없어졌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시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내가 험하고 거친 길을,
걷고 있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엎드러지지 않도록
나를 붙잡고 계심을 믿으시며,
오히려 소망의 찬송을 부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독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지하실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연구차 독일을 방문을 했던
사회학자 데이비드는 독일 가정 몇 곳을 둘러본
다음 함께 있던 조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완전히 무너진 이 민족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러자 조교들 중 한 사람이
재빨리 대답을 했습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학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해낼 것이네.”
조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장담하십니까?”
사회학자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들은 지하실에
있던 탁자 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보았나?”
조교들이 대답했습니다. “꽃병이 놓여 있던데요.”
사회학자는 독일민족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근거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유일세.
저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탁자 위에 꽃을
꽂아둘 수 있는 민족이라면 반드시 폐허를
딛고 일어나 국가를 재건할거야!”
여러분! 2차 세계 대전 후 폐허가 된 독일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꽂아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무조건 잘 되기만을 바라는 그런,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이런 식의 희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심어진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문이 있다는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축복의 통로가 있다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작정 잘 되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원하시고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주신 것을 거두어가셨지만,
반드시 다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주신 분도, 거두신 분도,
다시 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소망의 하나님 아버지!
주신 분도, 거두신 분도, 다시 주실 분도,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진행되어짐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망의 찬송을 부르며 예배하게 하옵소서.
무작정 잘 되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도우셔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주셔서 거두어가셨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주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고,
다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오히려 소망의 찬송을 부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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