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200624수요일밤 사무엘하 12장 5절 마땅히 죽을 자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다윗이 나단 선지자 말을 듣고, 마땅히 죽을 자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다윗이 마땅히 죽을 자인데 말입니다.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간음하고 거기다가 이 여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성 가까이 가도록해서요,
죽도록 지시를 내렸단 말입니다. 간음죄에 살인죄까지 범했는데도, 다윗은 어때요?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얼마나 큰 악을 행하였는지에 대해 전혀 깨닫질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문 앞에 11장 마지막 절 마지막 부분에 보니까, 뭐라 했습니까?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자,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회개시키려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전한 그 내용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오늘 본문입니다.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가 잔뜩 났습니다.
그래서 나단에게 말합니다. 뭐라고 했지요?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들려주신 이야기는 사실 다윗을 두고 한 말씀이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자의 죄에 대해서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런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혹 이 다윗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보면 되잖아요?
나는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죄인라고 고백은 하지만,
자신이 정말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우린 이런 말을 곧잘 합니다. 기도할 때도 말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지만, 실제로는 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지 못한 채,
내 입 밖으로 내뱉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 유명한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정말 나 같은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 하니까, 하도 많이 듣다 보니까,
‘나 같은 죄인’ ‘쓸모없는 죄인’ ‘말로 다 할 수 없는 죄인’ 겉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실제 속으로는 그런 깊은 깨달음이 없는 건 아닌지, 우리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만약, 다윗처럼, 다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죄인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런 마땅히 죽을 죄인으로 생각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내가 그러고 있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성령님, 우리들 자신을 바로 보게 하옵소서. 우리 눈을 열어주셔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바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나 여러분이나, 정말 나 같은 죄인임을 깨닫는, 그런 깊은 깨달음, 놀라운 은혜의 체험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는데,
만약 내가 ‘나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면,
무슨 복음에 대한 감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음에 대한
큰 구원의 기쁨과 감격함이 있겠습니까?
간절히 바랍니다.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기에 계신 분, 한 분도 예외 없이, ‘나는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큰 죄인이다.’
‘예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함이 있으시고, 여기서 출발해서,
하나님 앞에서 더욱 더 겸손하여지고요,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제는 더 겸손한 모습으로 섬기며 대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비록 처음에는, 다른 사람만 큰 죄인으로 생각하고, 마땅히 죽을 자라고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마땅히 죽을 큰 죄인으로 전혀 생각을 갖지 못했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선, 즉시로 회개합니다.
정말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선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시편 51편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19절이나 되고 너무 기니까, 이 시간 다 읽을 수는 없고, 저가 한 번 불러보겠습니다.
시51:10-12을 배경으로 만든 곡입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그 구원의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변치 않는 맘 내 안에 주소서.”
그리고 아주 유명한 성경구절, 이 기도를 합니다.
(화면보기) 시편 51편 17절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이 고백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제사를 기뻐 받으신다고 고백을 합니까?
상한 심령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공동번역 개정판은 '찢어지고 터진 마음'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이토록 다윗은 아파했을까요? 이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신이 큰 죄인인 줄을 몰랐을 때는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 자기 말고요, 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야 깨달은 겁니다.
바로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인 줄을 깨달은 겁니다.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할 큰 죄인인 것을 깨달은 순간, 그토록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심령이 터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고, 그런 찢어지고 터질 정도로 아파하는 그 마음을,
기뻐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통회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진정 나 같은 죄인임을 깨닫고 찢어지는 가슴,
터질 것만 같은 그런 애통해하는 마음이 있냐는 겁니다.
어떤 분은 아예 이런 주님과의 만남 자체가 없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함이 있었는데,
점차 그만 잃어버리고, 지금은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분도 계실 겁니다.
죄라는 성격은 참 무섭습니다. 무섭게 우리 심령을 파괴합니다.
처음에 죄 지었을 때는 참 가슴 아파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같은 죄를 짓다보면,
어느새 심령이 무디어집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해집니다. 가슴 아파하지도 않습니다.
입술로만 이 못난 죄인 용서해달라고 하지, 가슴 아파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형식적인 회개를 하거나 아예 회개를 하지 않고 삽니다.
혹 우리의 심령이, 가슴 아파할 줄 모르고, 무디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죄에 대해 무감각해져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오, 하나님, 우리에게 애통하며 회개하는 맘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혼자 부르기)
“예수여 비오니, 나의 기도 들으사,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들이 ‘나 같은 죄인’, 이제 형식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정말 내가 큰 죄인임을 깨닫고 나 같은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조그마한 잘못에도 크게 아파하고, 반복되는 죄에 찢어지는 가슴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꼭 뭐 신비스런 체험을 해야 만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이 보이고
“내가 널 사랑한다.” “널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렸다.”
생생하게 귀에 들려지고 이런 것만이 인격적인 만남이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깨달음으로
구원의 감격함속에서 흐르는 눈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고 천국 영생의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천국 소망가운데 내 영혼이 춤추고 찬양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어야지,
주체할 수 없는 영적인 큰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늘 주님 만나고 싶어서 기도, 찬송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정, 교회, 영혼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섬김으로 이웃을 섬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의 눈을 열어주셔서,
여러분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날마다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고,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늘 예수님과 동행하고요,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하고 섬기며 살면서,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눈을 떠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나 같은 죄인임을 깨닫고,
날마다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늘 예수님과 동행하며,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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