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1주일 다니엘 3장 17-18절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수요일,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과 묘지를 다녀왔습니다.
(화면보기) 사진 (손양원 목사님의 막내 아들 손동길씨)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시대때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으며, 두 아들 장례식 때, 10가지 감사기도를 했었다고 합니다.
아홉 가지 감사가 많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실제는 한 가지 더 있다고 합니다.
기념관 앞에서 “하나님께”를 넣어 읽었는데요. 울컥했습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전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였으니 감사.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으니 감사.
셋째,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 리요. 감사.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감사.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께 감사.
열째,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부모님이,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이루어진,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자매들이,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은 그 극한 슬픔 가운데 드린 감사입니다.
1948년 손 목사님의 두 아들이 순교했는데요, 벌써 7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지만,
‘범사에 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우리들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18절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자,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2:49 말씀처럼,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는, 그런 부귀 영화 권세를 누리는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놓고선 관원들 모두 참석하여,
그 금신상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높이가 60규빗이니까, 약 30m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 세 친구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선 왕은 13절 이하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느부갓네살 왕은 몹시 화가 나서,
다니엘의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자, 그들이 왕 앞에 붙들려 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들어라. 너희가 참으로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느냐?
지금이라도 너희가 내가 만든 신상에게 엎드려 절을 할 마음이 되어 있으면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다.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그러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만일 풀무불에 우리를 던진다면, 우리를 지키시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활활 타는 풀무불 속에서 구해 주시고, 왕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을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왕의 질문에
저들은 담대히 말했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안 된다고 해도, 다시 말해서, 불속에서 죽는다고 해도,
우리는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이들은 부귀, 영화, 권세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신분인데도, 그런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버립니다.
심지어는 하나 뿐인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를 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과 목숨을 버릴지언정,
하나님은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신앙입니다. ‘일사각오’의 신앙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처럼, 다니엘 세 친구들처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주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며 감사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혼자 부르기)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님만 사랑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가사 쓴 찬송가 541장 화면으로 보십시다.
저가 천천히 가사를 읽겠습니다.
(화면보기) 찬송가 541장, “꽃이 피는 봄날에만”
(1) 꽃이 피는 봄날에만 주의 사랑 있음인가?
열매 맺는 가을에만 주의 은혜 있음인가
땀을 쏟는 여름에도 주의 사랑 여전하며
추운겨울 주릴 때도 주의 위로 변함없네.
(2)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 더 귀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옵의 인내 아름답다.
이세상의 부귀영화 마귀 유혹 손짓하나
고생 중에 인내하면 최후승리 이루리라.
(3) 세상권력 등에 업고 믿는 자를 핍박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아 회개하고 돌아오라.
우상의 힘 얼마 가며 인간의 힘 얼마가나?
하나님의 심판 날에 견디지를 못하리라.
(4) 저 천국을 바라보니 이 세상은 나그네 길
죽음의길 피하라며 나의 갈길 막지 말라.
내게 맡긴 양을 위해 나의겨레 평화위해
우리주님 가신 길을 충성으로 따르리라. 아멘.
이 세상 즐거움, 쾌락에 빠져있으니까,
우리 영혼이 참 만족함이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다보니, 걱정, 근심, 두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동행하여,
항상 기뻐하시고, 범사에 감사하시고요,
천국에 소망을 두심으로써,
마음에 참된 평안과 위로로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또, 감옥에 가서도 우상숭배를 거부했다가 옥살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또, 6.25때도 감옥에 들어갔고요.
1950.9.28 10명씩 정도 한 조를 이루게 해서 밧줄로 묶어 여수 미평 밭,
지금으로 하면 여수 새중앙교회 옆 순교지 공원이 만들어진 곳을 지나시는데요,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 간다. 예수 천국”을 외치시다가
총 개머리 판에 얼굴을 맞아 함몰되고, 총에 맞아 순교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사각오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시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묻습니다.
(24:3)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24:7-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다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면보기) 마태복음 24장 9절, 13절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일사각오가 무엇입니까? 한 번 죽는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한 번 죽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입니다.
죽을 위기에서, 신앙을 버리고, 여러 번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러 번 목숨을 버리지 못하고요, 신앙을 버리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선 안 됩니다.
한 번에 내 목숨 버릴지언정 예수님을 하나님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한 번에 죽어도 믿음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일사각오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끝까지 견디십시다.
이런 환난에도, 죽음의 위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고요,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십자가를 붙잡고요,
끝까지 믿음을 지키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동행하여,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천국에 소망을 둠으로써,
마음에 참된 평안과 위로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십자가 붙잡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화면보기)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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