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8주일 갈라디아서 5장 16절 성령 충만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시147:1)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나님께 찬송함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마땅한 일인지요!
(화면보기) 시편 150편 6절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숨 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호흡이 있는 우리가, 생명이 있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 호흡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호흡이 없으면, 죽고 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의 호흡을 거두시면 죽는 겁니다.
(화면보기) 시편 104편 29절
29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숨을 거두어들이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고 맙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호흡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화면보기) 시편 104편 33편
33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내 호흡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 코로나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 하나님,
자동차로 버스로 오고가는 길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걸어서 예배당 안에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
내게 생명주신 하나님, 내 평생에, 내 마지막 호흡을 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이어서 지난주간, 저가 시편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지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나누고 싶습니다.
시편 139편을 읽으면서 물론 그 유명한 구절 1~4절,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시고 살피시고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전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요.
저는 또 다른 구절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화면보기) 시편 139편 13절, 16절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믿어지면서 큰 기쁨과 감격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속 오장육부 만들어주시고요, 어머니 뱃속에서 저를 빚어주셨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이게 너무 기쁜 거에요. 그러니, 저는 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그리고요. 16절 너무나도 감격스런 말씀입니다.
공동번역개정판에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주님 눈은 보고 계셨으며, 그 됨됨이를 모두 주님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이것도 믿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전부터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요, 이미 저에 대한 모든 삶의 계획을 다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믿어졌습니다.
그러니, 저의 마음에 큰 기쁨과 감격함이 있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보시고 나의 모든 삶을 계획하신 분,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요, 저는 이러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화면보기) 시편 135편 15-18절
15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16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18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세상 사람들은 볼 수도 없고요, 들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우상을 섬기고 있어요.
또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해, 달, 별, 나무한테 빌고 있어요.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헛된 것에 빌고 있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어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것을 보시고 심지어는 내 속마음까지도 읽으시는 분이십니다.
다 들으시는데요, 부르짖는 “주여!”만이 아닙니다. 내 조그마한 힘없이 부르는 소리 ‘주여!’도 들으시고요,
심지어는 내 신음소리, 탄식하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러하신 전지전능하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요,
우리를 지으신,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으니까요,
저와 여러분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에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 이 사순절 기간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찬송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깨닫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하십니다.
또,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감동해 믿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했는데요.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행하라 이 말씀입니다.
자, 다시 정리를 해보면,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가르치셔서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감동해주셔서 믿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끌어주셔서 행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따라 행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흔히 성령 충만, 성령 충만 그러는데요.
오늘 이것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알고 가셨으면 합니다.(지난주일: 자기부인, 십자가 짐)
성령 충만은 이렇게 컵에 물이 가득히 찬 것처럼,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아주 쉽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내게 넓고 깊은 깨달음을 주시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하나님,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큰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행하지 않고서는 안 되게끔 이끄시는 겁니다.
진실한 회개를 하게 하시고요, 말씀을 통해 구원의 길, 생명의 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주시고요,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주십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깊은 깨달음’과 ‘큰 감동’과 ‘놀라운 이끄심’입니다.
이런 성령 충만한 삶, 곧 성령님께로부터 깊은 깨달음을 받으시고요, 성령님께로부터 큰 감동을 받으시고요,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행하시는 삶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 하나 다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소요되니까요,
오늘은 간단히 요약적으로 전하겠습니다.
아까 우리가 처음에 했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전지전능하신 분,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이심을 깨닫게 해주셔요.
이런 깨달음과 함께 우리 마음에 무엇을 주셔요? 큰 감동을 주셨어요. ‘기쁨’과 ‘감격함’을 주셨어요.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 구주 예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기쁨으로 감사하고, 감격함으로 찬양합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특별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수고의 땀과 사랑의 눈물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감동해주셔요.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참 즐겁게 해주셔요.
그래서 우리는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어도 기쁨으로 걷습니다.
주님 뒤를 따라간다는 것이 피 흘리는 영적 전쟁이지만,
성령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힘을 얻고 소망을 갖고 찬송하며 즐거움으로 주님 뒤를 따라갑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기쁨과 감격함으로 감사, 찬송하시고요, 아무리 힘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이어도, 주님 뒤를 따라가는 것이 피 흘리는 영적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지셔서,
주님 뒤를 따라 가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저 역시,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얘들한테 예배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선,
몇 십 분을 예배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다 보니까, 길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방에 들어오는데요. 마음이 상당히 무거웠습니다.
저의 힘으로 얘들을 바꾸려고 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선 회개했습니다.
그 다음날 여기에 맞게 또 성령님께서 말씀을 주시면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25일 목요일, 잠언 25장을 읽으면서 ‘부드러운 혀’ 이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저 자신을 살피고 다짐을 했습니다. 이게 다 성령님의 이끄심이죠.
이렇게 이끄시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게 하셨어요.
‘나는 말을 많이 해서 내 힘으로 저들을 바꾸려고 했다. 이것이 교만이지 않는가?
또, 강하고 억압하는 말로 변화시키려고 했다.
정작 자녀들에게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동기부여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반성을 하고요. 결심을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도록 하자.
기도하고 또 기도하자. 기다리며 또 기다리자.
내 말로 그것도 억악접인 강한 말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자녀들이 스스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말로 감싸주고 응원해주는 격려의 말을 하자.’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요. 바로 그날 저녁 목요일 저녁, 다시 가족모임을 할 때요.
저는 자녀들에게 저 스스로의 잘못을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말로 교육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제 자신의 속마음을 나누는 ‘나눔의 시간’이 되도록 하자.”
그랬더니, 아이들이 반기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자신이 나누고 싶은 내용을 나눕니다.
많이 자연스런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께서 저의 잘못을 발견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부드러운 혀가 되도록 가르쳐주시고,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알면 알수록, 어떤 사람은 그 아는 것만큼 자신이 그렇게 행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와 달리 또 다른 사람은 알면 알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진실한 회개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를 살피고 있습니까?
이 말씀 구절을 성령님께서 떠올려주셨습니다.
(화면보기) 요한일서 1장 10절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요.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알면서도, 내 자신이 죄인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지난주간 시편을 읽으면서 참 소중한 말씀들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그 중의 하나가 다윗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자 보시죠.
(화면보기) 시편 143편 2절
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살아 있는 사람치고 주님 앞에서 무죄한 자가 없다고 고백을 하면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소원을 간절히 구합니다.
이어서 10절에요.
(화면보기) 시편 143편 10절
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저는 정말로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주님 뜻대로 사는 길을 가르쳐달라면서, 선하신 영, 성령님께서 공평한 땅에 인도해달라고, 다시 말해서, 성령님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이끌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내가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성령님께서 주님 기뻐하신 길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주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옵소서.”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정말 좋은 곡 하나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찬송가에도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214장이 있습니다만,
‘내 모습 이대로’란 곡인데요.
자, 한 번 가사를 보시죠.
『내 모습 이대로 사랑 하시네.
연약함 그대로 사랑 하시네.
나의 모든 발걸음
주가 아시나니 날 인도 하소서.
주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
주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
나의 가장 큰 소망
나의 가장 큰 은혜
주와 함께 동행 하는 일』
성령님께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실 때,
내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내 부족한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의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시고요,
성령님께서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감동해주실 때,
진실하게 내 스스로를 살피며 용서를 구하시고요,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이제 내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내가 주인이 되어 내 기뻐하는 대로 살았던 삶에서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예수님 기뻐하시는 삶으로,
참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고요,
주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망이고,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은혜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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